스스로의 재능을 빈약하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괜히 내뱉는 허툰 소리로 설명해보자면 스스로 이 말에 관하여 설득을 불가피하게 만든 어떤 작가가 했던 말 때문일 겁니다. 작가는 '사진은 예술에 있어서 재능이 가장 필요 없는 분야다.'라고 했죠 당시 이 문장에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알고있었을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철저하게 외면하며 말이에요. 최근 그림을 그리시는 분과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진과 그림에 대해 어떤 분야가 더 대단한가에 대한 의미 없는 공론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결과가 뚜렷한 대화에서 그분은 겸손하게 사진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셨습니다만 역시나 프레임 속 선과 점을 작가 본인만의 세계에서 현실로 끌어내는 일이 훨씬 대단한 일임을 저는 잘 알고 있었죠. 그분의 배려에 누가 되지 않게 저 또한 아름다운 말들로 빙 둘러말했습니다. 제가 이 대화에서 올타임 가드를 올리고있다 하더라도 단박에 카운터 펀치를 맞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사실 제가 카메라를 사게 된 이유와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원체 그림에 대해 소질이 없을 뿐더러 '나도 연습하면 되겠지'라는 어이없는 소리를 하며 지냈거든요. 사실 중학생 때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를 따라 스케치를 몇 번 연습한 적이 있긴 합니다만 그 스케치는 단연 보잘것없었고 내가 그리고자 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물이 나오곤 했죠 하지만 이 그림이 혹 나 조차도 못 알아보는 '천재적 재능'인가에 대해 조금 고민한 적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 창피한 그림을 지우기 급급했습니다. 어쩌면 펜으로 프레임을 칠해나가는 것보다 셔터를 누르고 초점을 잡는 게 자연스러운 처사였을지도요. 자꾸 나의 치부책을 펼치는 것 같습니다만 이게 곧 카메라를 들게 한 이유이니 부끄러워도 받아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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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이론을 통해 배우기보다 사춘기 전 부터 카메라와 친구처럼 지내다 체득하게 된 조작법들이 지금에 이르러 감사한 기술이 됐습니다. 건너간 이야기에 창피함을 하나 더 들어내자면 본인은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무섭습니다. 아이러니하지요 남에게 포즈와 콘셉트를 긴박하게 요구하는 것은 잘하지만 제 눈동자는 렌즈를 바라보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합니다. 사진을 찍히지 않으려면 전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돼야 했고 그게 10대 시절 저의 놀이이자 현재까지의 꿈을 연결해주는 장치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이 분야를 똑똑하게 키워나간 것도 아닙니다. 위안이 필요할 때만 찾았어요 어쩌면 카메라는 제게 많은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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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받았을 카메라에게 빈약한 변명을 덧대자면 몇달 전 하루 종일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듣고 정처 없이 사진을 찍어 그 사진을 전시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행복과 유사했어요 사진을 10년 넘게 찍었지만 시간을 통으로 내다 꺼내어 몰두를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조용한 곳에 혼자 있으면 그 사색에 걸맞은 감성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곤 합니다. 신안 그 바닷가에서 느꼈던 오묘한 외로움과 해방감은 생에 잊지 못할 순간으로 새겨졌습니다.
전시는 아무도 찾지 않았지만 정성것 고른 노래가 흘러나오고 조명에 비춘 제 사진을 보니 조금은 뭉클했습니다. 그때 저의 재능이 빈약하다며 그 가치를 절하한 순간들이 선사하던 설득들이 모두 무너져 내렸습니다. 재능은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느꼈거든요. 카메라를 붙잡고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생각이 있다면 저에게서 당당해져야 했습니다. 빈약할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창피하고 싶지 않아요. 그게 지금 남들과 다른 방향을 걸을 수 있도록 결심하게 된 촉매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