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강원도에만 머무른 게 아닌데 주변 사람들에게 여행의 전반을 설명할 때 귀찮음을 동반해 강원도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진집 준비를 위해 젊은 작가들의 사진을 보고자 북촌에도 갔었고 에릭 요한슨의 전시를 보기 위해 여의도에도 갔습니다.
강원도에서 먼저 당도한 곳은 춘천이었습니다. 생에 두번 째 강원도를 오게 됐는데 실은 민간인 신분으로 오게 된 것은 처음입니다. 군에 있을 때 처음 강원도에 있는 막국수를 먹고서 죽기 전 7천 원이 있다면 꼭 이곳의 막국수를 먹겠노라 다짐까지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후에 며칠 전 같은 곳에 가서 그때와 비슷한 간을 맞추어 메밀면과 참깨 고명을 비벼 입에 넣었지만 당시에 먹었던 맛을 좇아갈 수 없었습니다. 심심하지만 입에 감도는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머릿속에서 재차 말을 했지만 제 혓바닥은 무심하게도 그 전파를 따라갈 수 없었나 봅니다. 그 실망감 때문이었을까요 춘천을 건너 속초로 갔습니다. 11월 말의 강원도는 북극과 알래스카 그 사이를 오갈 정도의 추위 었습니다. 속초에 지내는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고 한 달을 여덟 번 정도 지내고 나서 만나 저에게 전해준 말은 결혼 소식이었어요. 실은 징그러웠습니다. 아직 스물다섯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인데 결혼이라뇨, 친구에게 소식을 전해 듣고 축하보다 탄성을 짧게 한 번 내뱉었습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에 있어서 '이제 너는 어리지 않아'라고 자꾸만 누군가 제게 채근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고 어리다는 것은 이제 어림없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려니 그 어린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소식을 전한 친구와 동네 뜰에서 야구를 하던 기억, 피시방에서 함께 밤새 게임을 하던 그런 자질구레하고 솜사탕 같은 기억들 말입니다. 징그럽고 괴팍하지만 어쩌겠습까. 한 것 어른인 척 친구에게 축하와 동시에 어딘가에서 주워 들어 과장된 풍문을 끼얹은 위로를 해줄 수밖에요.
그 날 새벽 좋아하는 사람에게 엽서를 적었습니다. 아름다운 사진 뒤 편에 꾹꾹 눌러 담아 최대한 포장된 글씨체로요. 그 엽서를 써 내려가는 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워요 왜냐면 아직은 좋아하는 마음을 들키면 안 되는 사이거든요. 그 마음을 조금만 들켜야 하는 사이 정도로 해두면 좋겠습니다. 힘이 일방적인 줄다리기 경기에서 그 힘의 간극을 적당히 조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명랑하지만 기저에 시크함이 깔린 친구에게 내숭이 섞인 웃음을 바라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그 모습이 자꾸 저를 끌어당기는 듯합니다. 이를테면 항상 매를 드시던 선생님께서 조용히 교무실로 불러 수업 때와 다른 포근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처럼요. 사실 저는 대단히 착각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 사람이 저를 되게 많이 좋아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 이유는 그 사람이 가진 태생적 성격에 비롯합니다. 남에게 잘 웃지 않는 성격에 말은 더욱 붙이지 못하는 성격인 듯합니다. 전형적인 'I'의 성향을 가졌다 느꼈어요. 그런 사람이 제가 하는 말에 웃어주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제가 궁금한 듯한 말투로 뭐 하고 있냐고 묻기까지 해요. 그저 감사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큰 시험을 앞둔 그 친구에게 조금 더 나아간 관계를 바라는 건 이기적인 행태라 여겼지만 자기가 괜찮으니까 너는 신경 쓰지 말라는 식의 말을 저에게 꽂아 넣으니 이 친구는 도대체 저를 미지의 어느 부분까지 끌어내리려는지 의문입니다.
아무튼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아직 사진에대한 열정이나 글을 쓸 때에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를 잊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잘 쓴 글이 아니라 만족할 만한 글을요. 누군가 제 글을 보면 '이딴 글을 싸질러놓고 만족한다고?'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면에서 단단해지기로 결심했으니 아무렴요.
벌써 마지막 밤이 다가왔습니다. 춘천 속초 고성 양양 강릉을 거쳐 다시 속초에서 마지막 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려가면 어떤 일상에 스며들까요 어떻게 조작해 나아가야 할지 설렘과 그 뒤편에 두려움이 동시에 투과되어 마주하고 있습니다. 잘 지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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