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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말정산

by MNGSN 2022. 1. 2.

작년 한 해의 이야기가 아직 엊그제 같은 선명함을 띄고 있지만 돌아오지 않을 스물넷에 또 미안한 마음으로 한 해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미안함보다는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 지을 수 있으려나요 실은 어떻게 보내든지 후회 몇 스푼쯤이야 견뎌야 할 문제겠지만요 이 글은 올해 매 순간 최선을 다했는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에 대한 연말정산이자 그렇지 않았던 올해에 대한 반성문입니다. 차근차근 짚어본 올해에는 내세울만한 일들보다 게을렀고 상처받았 던 일들의 파장이 컸던 한 해였습니다.

올 초에는 창피하지만 카메라를 사기 위해 일만 했습니다. 습기먹은 오랜 꿈에 후회를 줄이기 위해서였죠 쇳가루가 방자하는 마스크 공장에서 하루 몇 만개의 마스크를 찍어내며 곧 손에 쥐게 될 카메라를 수 없이 떠올리며 버텼습니다. 일하는 중엔 무릎 근육이 터져나가 생에 처음으로 가죽으로 뒤 덮인 제 몸 속 안을 들여다 보기도 했습니다. 뭐 대단한 성공이나 하려고 그리 카메라에 집착한 것은 아닙니다만 당시 어딘가에 몰두해야만 했고 찾아가야만 했던 낡은 꿈이 있었거든요. 너무 낡아 그 끝이 날카로움을 잃기전에 한 순간이라도 마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찍고 내 방식으로 제어해서 만드는 일에 관해서요. 이것이 저의 퀴퀴한 낡은 꿈입니다. 그렇지만 카메라가 막상 생기니 막막하고 초조했습니다. 막연히 카메라가 가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도요. 카메라로 어떤것을 창작해야할지 도무지 생각이 서지 않았습니다. 다 얻었다 생각했으나 또 다시 출발점에 내버려진 듯한, 망망대해한 지중해 한 가운데 놓여진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전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 정말 카메라가 왜 필요한가에 대해 어지러운 질문들만 가득한 상태이지만 어떻게든 합리화된 대답들로 돌려막으며 불안함을 메워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쥐고서 몇 달간을 그 지끈거리는 생각들로 나태하게 보냈습니다. 당장의 무덤덤함속에서 복학해 배우고싶지 않은 것을 공부해야했고 의지나 이유같은것들을 찾으려고조차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1학기가 끝나고 8월이 돼서야 제 카메라가 그려낼 수 있는 성능과 내가 찍고싶은 사진의 접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그 시점 제가 찍은 것들은 어딘가 외롭고,고립되어 상실에 가득찬 것들이었어요. 직전의 저와 많이 닮았다 느꼈죠. 그 때 느낀 낯선 행복은 내가 바라던 낡은 꿈에 드리운 먼지를 조금 털어낸 기분이었습니다. 짧은 한달 간 눈뜨고 사진 찍는 일만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사진전을 열기도 했고요. 해냈다는 느슨함은 곧 나태해져가는 길이었다는걸 알기도 했습니다. 올해 가장 행복했던 날은 카메라를 손에 거머쥔 날도 아니었고 사진전을 열었던 순간도 아니었어요. 뒤돌아보지 않고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과정들이었어요. 카메라를 사기위해 저녁까지 일하고 퇴근 이후 지친 몸을 이끌고 운동을 가던 그날들의 저녁이었습니다. 창피하지만 이미 게을러지고 쳐진 제 모습을 마주하고서야 그 순간들이 가장 소중했고 가치 있었다는 것을 몇 번이고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행복과 그 정반대를 수 없이 오가면서 태어나 처음 사회생활 중에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고 아파하면서 스스로에게 실망도 많이 했고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아 실패한 연애도요.

최선을 다해 살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바라는 일의 윤곽 정도는 본 것 같아요 이것을 선명하게 그려나가는 것이 앞으로 주어진 과제겠지요. 사진을 찍고 행복하겠다는 제 바람이 어느 정도 들어맞은 것에 대한 성취감은 있습니다.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 위로받고 행복했던 기억도요.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게 됐고 그 일들로 인해 내년에 제가 선택할 수 있는 활동의 폭이 넓어졌습니다만 부디 허투루 시간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를 원망해봐야 남는 것은 저의 부족함 뿐이라는 것을 알지만 곧 다가올 2022년을 맞이하는 심정은 뜨거움보다 겁이 납니다. 올해 저는 생각보다 어리다는 것을 알게 됐고 강하지 않으며 채워진 부분보다 빈 공간이 더 많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됐어요. 노력했던 시간보다 게으르고 취해있던 시간들이 많았고 다짐의 강도가 많이 낮아진 사람이었습니다. 올해는 전략적으로나 기량으로나 실패한 한 해였지만 딛고 올라가기 위해 창피하지만 자신을 뜯어보는 중입니다. 다시 위로를 쥐어짜 보자면 상처받은 부분들에 생겨난 굳은살들로 내년엔 덜 다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격려를 던져보면서 끊임없이 열심히 살 이유를 찾아야겠습니다.

뒤죽박죽 지난한 올해만큼이나 이것을 정리하는 일도 쉬운 게 아닙니다. 내년엔 조용히 어금니 꽉 깨물며 지내야 겠습니다. 젊음의 정점이라 생각하는 스물 다섯, 부디 이 나이의 끝에서는 스스로에게 잘했다며 토닥여주고 싶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요. 덜 상처받길 바라진 않지만 올해 만큼이나 스스로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지내오다 보니 벌써 스물다섯 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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